역사는 가끔 거짓말을 한다. 기록한 자의 관점에서 쓰여지기 때문이다. 기록한 자는 자기 영역의 것을 미화하고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사실을 기록하되 자기 식의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진실을 왜곡되고 꾸며진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역사책들의 얼마는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492년,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일에 대해 역사는 '신대륙 발견'이라는 수식어를 빼놓지 않는다. 이에 대해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문명세계가 발견한 새로운 대륙이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아메리카'하면 '신대륙'이라는 단어를 함께 떠올려 왔따. 하지만 이것은 다분히 역사를 기록한 자의 일방적인 논리이며 거짓말이다. 아메리카는 새로운 대륙이 아니었다. 이미 그곳에는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콜롬버스와 같은 유럽인의 관점에서는 신대륙일지 몰라도 원주민들에게 있어 아메리카는 조상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이며 고향이고 유산이었다. 다시 말해 유럽인에게 이 역사는 '신대륙 발견'이었지만, 원주민들에게는 '유럽인의 생활권 침해-이후에는 강제적이고 악랄한 침략으로 변했다'였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유럽인의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만을 접했던 것이다.
사람이 기록한 역사는 십자군 전쟁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십자군 전쟁은 천주교와 이슬람교 간에 예루살렘 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다. 이 역사는 대개 천주교의 편에 의해 쓰여졌다. 천주교의 입장에서는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한 성전(聖戰)'이었지만, 이슬람교의 입장에서는 '외세의 침략에 대한 방어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 역사는 천주교가 십자군을 결성할 수밖에 없는 부득이한(?) 이유에 대해 "성지를 회복하는 일은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교황 우르바노 2세의 명령 때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역사를 읽은 자는, 특히 천주교인들은 십자군 편에 서서 십자군 전쟁이 성전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을 심산이 크다.
역사는 이렇듯 누구의 관점에서 쓰였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기록 또한 일본과 한국의 관점은 판이하게 다르다. 강점의 역사에 대해 한국은 일본의 '침략'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의 번영을 위한 '진출'이라는 전혀 다른 옷감으로 짜깁기하고 있다. 강점기 때의 쌀 '수탈'의 역사를 일본은 '수출'로 기록하고 있다. 또, 의병 '학살'에 대한 만행을 일본은 '토벌'로 표현하고 있다. 한일 간에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건 이 역사에 대해서는 목격자와 증인이 있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조상들의 증언 덕분에 우리는 전혀 다른 관점의 두역사의 기록을 접하면서도 어느 것이 진실인지 통찰할 수있다. 하지만, 일본인들 가운데는 그들의 관점에서 쓰여진 역사만을 고집하며 한국을 얕잡아보고 반대한다. 이렇듯 혁사는 기록한 자의 편에 선 사람들의 마음에 오롯이 뿌리를 내려 고정관념으로 자리잡는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자, 자세히 읽어 보라.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지킨 것은 354년의 기록에 나타났으니, 곧 로마감독 리베리우스(Liberius) 시대였다. 379년에는 콘스탄티노플 시에서 축하하였고 애굽과 팔레스틴에 전파되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을 특기하자면 그 풍속이 로마에서 일어난 것이니 그 차제가 이런 것이다. 로마에는 12월 말에 들어서면서 연거퍼 삼대 축제일이 있은 것이다.
그 하나는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 또 하나는 시길라리아(Sigillalia) ··· 나머지 하나는 브루말리아(Brumalia) 제일이니 이것은 동지제로서 태양의 떠오름을 축하하는 절기였다. 이런 축제일에 가담할 수 없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별다른 의미로 축하하는 집회를 모색하게 된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 태양이 나온 후에 탄생하셨다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서 이때로 크리스마스를 삼아 축하하는 풍이 시작하게 된 것이니 이것이 곧 구주 강탄 축하의 시작인 것이다.” (교회사, 이건사)
그 하나는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 또 하나는 시길라리아(Sigillalia) ··· 나머지 하나는 브루말리아(Brumalia) 제일이니 이것은 동지제로서 태양의 떠오름을 축하하는 절기였다. 이런 축제일에 가담할 수 없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별다른 의미로 축하하는 집회를 모색하게 된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 태양이 나온 후에 탄생하셨다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서 이때로 크리스마스를 삼아 축하하는 풍이 시작하게 된 것이니 이것이 곧 구주 강탄 축하의 시작인 것이다.” (교회사, 이건사)
로마의 축제요, 태양신의 제삿날인데 그날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정하는 것이 합당하렷다…. 사실을 기록하였으되 해석이 이상하다. 만약 이 역사의 기록을 보며 크리스마스가 면면히 이어져온 기독교의 문화,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크리스마스에 대해 단 한 글자도 기록하고 있지 않다. 사도 바울이 이 역사를 읽는다면 어떻게 해석할까. 일찍이 그가 했던 말을 다시 하게 되리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하고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고 구원을 바라며 그의 말씀을 믿고 따른다. 진정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믿고 구원을 바란다면 교회 역사의 이면에 감추어진 진짜 얼굴을 가려낼 혜안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혜안이 없다면 역사는 제쳐두고 성경만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기록한 역사처럼 거짓이 없으며 100% 신뢰할 만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쓰여진 성경대로 행하는 하나님의교회는
크리스마스가 아닌 하나님께서 명하신 새언약유월절을 지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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