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0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 초로人생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닷컴★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도서 1:2~3)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그는 왜 이런 기록을 남겼을까. 흔히 사람들은 우리의 인생을 '공수래공수거' 혹은 '일장춘몽'이라고 표현한다. 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한 말이다. 시인이나 작가들도 우리네 인생을 '초로인생'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의교회


잎에 맺힌 이슬과 같이 덧없는 인생을 뜻하는 말이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 김윤진의 시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인생을 초로인생이라고 하는 것일까. 일을 해서 얻은 수익과 보람도 다시 수고와 고생으로 이어지고, 질병이 발생하여 치료를 받아도 다시 같은 질병이나 다른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며, 슬픔을 이겨내도 또 다른 슬픔이 다가오고, 기쁨과 행복도 잠시 지나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솔로몬도 그 섭리를 피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져 지낼 수는 없다. 성경은 어떤 인생을 가장 가치 있다고 평가할까.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도서 12:13)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이라고 했다. 그렇게 할 때, 덧없는 인생에서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영원한 나라,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령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본분은, 성령과 신부를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초로 같은 인생에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요한계시록 22:17, 21:1~4).


들리세요? 
성령과신부께서 부르시는 음성이
초로 같은 인생들을 구원하시려 이땅까지 오신
하늘아버지 어머니께서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교회로 오세요~
생명수 주시어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약속하신
엘로힘하나님을 영접하세요~

2014년 1월 9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가인의 제사 Vⓢ 아벨의 제사§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


아담과 하와에게는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가인은 땅의 소산(곡식)으로,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이둘의 제사를 다 받으셨을까? 아니다. 짐승의 피를 제물로 드린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다. 왜 그랬을까?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

누군가의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죄가 사해지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벨은 하나님의 뜻대로 제사를 드린다면 축복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다(히브리서 11:4). 반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 임의대로 곡식으로 제사를 드렸던 가인은 결국 저주를 받았다. 그런데 가인처럼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근거 없는 제사를 드리는 자들이 참으로 많이 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마가복음 7:6~8)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계명을 따르는 자들은 가인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자들은 아벨과 같이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나 일요일 예배는 하나님의 계명일까, 사람의 계명일까?

성경 어디에도 크리스마스나 일요일 예배를 지키라는 말씀은 없다. 사실상 크리스마스는 A.D. 354년 태양을 신으로 숭배해 왔던 고대 로마인들에 의해 생겨난 축제일이다. 일요일 예배 또한 A.D. 321년 태양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예배하던 날을 로마 황제 콘스탄틴이 예배일로 법령화한 것이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 의해 생긴 것이므로 사람의 계명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크리스마스와 일요일 예배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가인의 제사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드리는 예배야말로 아벨의 제사인 것이다.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출애굽기 12:11~14)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19)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애굽기 20:8)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바울이 자기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사도행전 17:2)

하나님의 뜻대로 유월절과 안식일을 지킨다면 아벨과 같이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열납하시고 축복을 주실 것이다. 하지만 성경의 근거를 찾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나 일요일 예배를 지킨다면 결국 저주를 받을 것이다. 시기와 질투심에 동생을 죽이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가인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가는 천국이기에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의 뜻대로
새언약유월절을 지키며 안식일예배를 지킵니다.

2014년 1월 4일 토요일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어린양의 독백'

 패스티브닷컴&하나님의교회


어린양의 독백




"내가 그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치고..."

이제 곧, 이집트에 있는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내리실 열 번째 재앙이 바로 장자의 죽음입니다. 그곳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장자의 죽음은 온 가족의 슬픔이자 절망이겠지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죽음의 재앙에서 피할 길이 있습니다. 바로 '유월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정월 십사 일에 흠 없고 점 없는 1년 된 숫양을 잡아 그 피를 집 좌우 문설주에 바르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불에 태우면 죽음의 그림자가 넘어가게 됩니다. 그날이 오면 어린양은 체절한 고통에 허덕이다가 목숨이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월절 어린양인 저의 희생이 죽음을 넘어가게 해주는 유일한 비결인 것입니다.

저의 죽음으로 유월절을 지킨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종살이했던 이집트에서 해방을 받게 될 것이고, 제 피가 표적이 되어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제 죽음은 헛되지 않겠지만 밀려오는 두려움은 쉽사리 가시질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고통에 불응하지 않고 감당하겠습니다. 오직 이스라엘의 구원, 그 한 가지를 위해서 말입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5:7)

2천 년 전 유월절 어린양의 실체로 임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 대신 징계를 받으시고 고통을 당하셨다. 오직 인생들의 죄를 씻어주기 위해 그리하신 것이다(로마서 6:23).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희생하시고 새 언약 유월절을 세워주신 것이다. 유월절 양의 실체로 오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누가복음 22:15)



유월절 양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두번째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습니다.
새언약유월절로 구원을 허락하신 안상홍하나님께서
두번째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새언약유월절 지키는 안상홍님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2013년 12월 28일 토요일

하나님의교회 2014년에는.....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닷컴@

2013년 올해도 몇일 안 남았네요...
이웃님들은 2014년 새해에는 어떤 계획들을 세우셨어요?

2014년에는


연말연시가 되면 사람들은 한 해 동안 이룬 계획들을 돌아보고, 동시에 새해 동안 이루고자 하는 다양한 계획들을 세운다. 하지만 계획들은 모두 성공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실패하기를 바라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누구는 원하는 것을 이루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것일까. 흔히 성공은 타고난 유전자와 재능이 남달라야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한 리더십 전문가는 타고난 영감보다 지속적인 실행력이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 등 유명한 작곡가들이 영감을 받아 작곡을 한 것이 아니라 작곡에 몰두하다 보니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제가 천부적인 능력을 타고났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한 번을 웃기기 위해 적어도 백 번을 연습한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백 번을 연습한 적이 있습니까?”

세계적인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의 말이다. 영화마다 독특한 캐릭터로 세계인들의 배꼽을 잡게 했던 그는 대중에게 타고난 천재 배우로 박수 갈채를 받았지만, 실은 완성도 있는 연기력을 위해 백 번도 넘게 대본을 읽고 또 읽으며 연습했던 것이다. 딱히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계획을 이루기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다 보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디모데전서 4:7~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하나님 나라, 천국을 기다리는 우리는 새사람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교만, 시기, 질투, 고집, 미움 같은 죄의 습성을 가지고 이 땅에 내려왔다. 이러한 본성들이 컴퓨터 리셋하듯 단번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사는 데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듯 천국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연습이 필수적이다.

하나님의교회 2014년
현재까지도 연극인들의 가슴에 영웅으로 남아 있는 찰스 채플린, 그를 있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연습이었다. 필자도 2014년에는 '거듭남'이라는 단어를 되새기며, '사랑, 희생, 경건, 용서,겸손'을 연습하려고 한다. 그렇게 연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새사람으로 변화된 자신을 발견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천국까지 전진할 것이다. 그곳에 우리가 받아야 할 빛나는 하늘 면류관이 있기에.

패스티브닷컴@




하나님의교회 미래를 점쳐드립니다.


패스티브닷컴@

미래를 점쳐드립니다.



|예언자 다니엘[쥘 클로드 지글러作 1838]
사람들은 미래의 일을 궁금해 한다. 운세, 길흉화복에 대한 무한한 궁금증을 갖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연말연시가 되면 토정비결, 역학, 점집은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선거철에는 정치인들이 용하다는 점집을 드나든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리곤 한다.  심지어는 IT시대에 걸맞게 온라인을 통한 운세 사이트, 운세 어플까지 등장했는데 요즘 들어 이용자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모두들 한 해의 운수를 점치고, 혹시 모를 재앙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물가를 조심하라"는 무속인의 말 한마디에 물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복채로 수십 만원, 수백 만원을 불러도 흥정하지 않는다. 부적 하나에 수백 만원을 호가하는데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때로는 무당에게 수천만 원을 주고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무속인에 대한 신망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BC 6세기경,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어느 날 간밤에 꾸었던 꿈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다. 뭔가 심상치 않은 꿈인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꿈을 알아내기 위해 왕은 그 나라의 박수와 점쟁이들을 불러모았다.

왕은 믿었다. 나랏일에 참여했던 박수와 점쟁이들이 꿈뿐 아니라 해석까지 해줄 것이라 믿었다. 미래를 훤히 내다본다 하며 나라의 생사화복을 점쳐왔던 그들이었다. 이에 비하면 왕이 간밤에 꾸었던 꿈을 알아내는 일쯤은 하찮은 것이라 믿었다.

과연 박수와 점쟁이들은 꿈을 알아냈을까. 웬일인지 그들은 왕의 꿈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저 “그 꿈을 말씀해 주시면 해석하여 드리겠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왕의 꿈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으며, 왕의 질문은 너무 어려워 신 외에 어떤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세상에 일어날 일들을 훤히 내다본다던 그들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때 왕의 꿈과 해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왔으니 바로 다니엘이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밝히며 왕이 꾼 꿈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니엘은 왕이 간밤에 꾼 큰 신상을 정확히 얘기했고 해몽까지 해주었다. 왕은 그에게 엎드려 절하며 세상 만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했다.

“네가 이 비밀을 밝혀내는 것을 보니 참으로 너희 하나님은 모든 신들의 신이시며 모든 왕들의 주가 되시고 비밀을 밝혀내는 분이시구나” (다니엘 2:47, 현대인의성경)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세상 만사는 한낱 박수나 점쟁이로서는 알 수 없다. 간혹 그들의 점괘가 들어맞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정확한 미래를 점치지 못한다. 당신의 미래는 오직 하나님께 달려 있다. 성경대로 행했을 때 당신의 미래는 희망으로 찬란히 빛날 것이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들에게 
영원히 행복한 삶을 허락하시려
하늘의 하나님께서 친히 이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에 따라 이 땅 가운데 두번째 다시오신
하나님의교회에 계신 그리스도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


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 §어떤초대§


[어머니 하나님]

한 나라의 왕 혹은 대통령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퍽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리라.
그러데 당신은 곧 이보다 더 영광스러운 초대를 받게 될 것이다. 



1937년 10월 28일자 동아일보 2면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제목은 '신부 실종'이다. 기사는 혼인을 일주일 앞둔 신부 김영자의 행방을 찾는 내용이다.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신부가 없어지다니, 신랑과 가족들이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성경에도 이 사건과 흡사한 내용이 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잔치를 베푼 어떤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잔치를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손이 가득하지라...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으냐 하니...(마태복음22:1~14)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속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신부가 보이지 않는다. 신랑과 하객은 있는데 혼인잔치의 주인공이자 꽃이라 할 수 있는 신부는 어디로 갔을까. 혹자는 “성경의 신부는 성도들”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한다. 성경을 자세히 읽으면 그 주장이 오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유 속 신랑은 예수님 자신이며 청한 사람들은 성도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9:15, 마가복음 2:20, 누가복음 5:35)

이 말씀에서는 청한 사람들, 즉 성도를 혼인집의 손님들이라 비유하셨다. 하객을 불러놓고 신부 대신 결혼을 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 성도는 결코 신부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신부는 누구일까. 신부가 언급되지 않았던 공관복음서의 기록과는 달리 천국 혼인잔치가 성대히 열리는 장면을 기록하며 아내, 즉 신부를 언급해놓은 책이 있다. 요한계시록이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요한계시록 19:7~9)

사도 요한은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열리는 모습과 그의 신부, 청함을 받은 손님들을 계시로 보았다.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은 당연히 성도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등장하는 어린양의 아내는 누구인가.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요한계시록 21:9~10)

신부의 모습을 보고 싶은 사도 요한의 요청에 천사가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었다. 이 하늘 예루살렘에 대해 언급한 사도 바울의 증거를 보자.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갈라디아서 4:26)

신부를 일컬어 요한은 어린양의 아내라 했으며 하늘 예루살렘이라고 말했다. 그 예루살렘에 대해 사도 바울은 우리의 어머니라고 설명했다. 우리 아버지의 아내는 당연히 우리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성도인 우리는 과연 하늘 어머니의 존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아버지 하나님만 믿어온 기성교인이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잣대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사야 62:6~7)

예루살렘이 단순히 성벽이라면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찬송을 받게 하시겠는가. 세상에서 찬송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즉, 이 말씀에 나타난 예루살렘은 사도 바울이 증거한 우리의 어머니 즉, 하늘 어머니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누가 예루살렘을 세운다고 하셨는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영적 예루살렘이신 하늘 어머니는 아무나 세울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섬기고 알아야 하는 하늘 어머니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세워줄 수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도 알려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창세기 2:22~23)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빗대로 만든 하와를 아담에게 데려오자 아담은 하와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말하며 ‘여자’라 칭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경에 아담과 하와는 단지 아담과 하와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로마서 5:14)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20)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경 맨 마지막에 ‘오실 자’에 대해 언급했다. 바로 예수님이다. 즉 아담은 오실 자를 표상하고 있다는 것은 결론적으로 아담이 예수님을 나타낸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아담이 하와를 일컬어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칭했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해 주실 것을 예언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창세기 3:20)

또한 아담의 아내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준 것도 아담이다. 하와라는 이름의 뜻은 ‘생명’이다. 이 말씀은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하늘 어머니를 알려주실 것에 대한 예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고 세워주신 분이 바로 우리의 영혼을 낳으시고 구원하실 하늘 어머니다. 하늘 아버지와 하늘 어머니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령과 신부, 하늘아버지 어머니께 나아온 자들이 천국 혼인잔치에 청함을 입은 복 받은 자들이다.

@패스티브닷컴

성령과 신부 하늘아버지 어머니 좌정해 계신 하나님의교회

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다른 예수'는 누구?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




'다른 예수'는 누구?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편지에서 여태 한 번도 언급한 적 없는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다른 예수', 바울이 말하고 있는 다른 예수는 과연 누구일까? 당시 예수라는 이름의 동명이인이 성경에 있었던가? 사도 바울이 '다른 예수'라고 말한 부분을 살펴보자.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린도후서 11:4)

바울은 사도 시대부터 심심찮게 등장하던 거짓 사도들에 대한 경고로 이런 편지를 썼다. 이는 같은 장13절에서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고린도후서 11:13~15)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다른 예수’는 예수라는 이름의 다른 사람이 아닌 다른 선지자 즉 거짓 그리스도를 뜻하고 있다. 이는 사도들의 공통적인 골칫거리였다. 사도 요한도 거짓 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요한1서 2:18)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경고한 '다른 예수' 즉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그 방법 또한 성경에 있다.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요한2서 1:7)

바로 이것이다. ‘다른 예수’인 적그리스도는 재림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다. 성경에 따르면 예수님은 반드시 육체를 입고 다시 오신다. 게다가 그때는 죄를 사하는 권세인 유월절을 가지고 오신다고 하셨다(히브리서9:27~28). 성경에 나온 그대로 보면 된다.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육체로 오신 재림 그리스도에 대해 부인하려 한다면, 바로 당신이 '다른 예수'인 적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는 거짓 선지자인 것이다.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 하늘어머니를 찬양하는 하나님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