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4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 특별혜택!!? 특별사면법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


특별사면법


<패스티브닷컴>법에는 사면법이라는 것이 있다. 사면법에는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이 있다. 일반사면은 국가 원수가 소송법상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범죄의 종류를 지정하여 이에 해당하는 모든 범죄인에 대한 형을 일부 또는 전부를 소멸시키거나, 형의 선고를 받지 않은 자의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일반사면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특별사면은 형의 선고를 받은 특정 범죄인을 국가원수가 국회의 동의 절차 없이 자신의 특권으로 형의 전부나 일부를 소멸시키거나 형을 선고받지 않는 사람의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도 특별사면법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로마서6:23)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에베소서 1:7)



 

천국과지옥<uccspace.net>

하늘 재판정에서 선고받은 우리 죄의 형량은 '사망' 즉, 사형이었다. 그것은 번복할 수 없는 결과였다. 사형을 선고받았으니 당연히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형을 선고받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형수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 되어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대신 형을 당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사면을 받게 된 것이다.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8~19, 26~28)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사면하시기 위해 특별히 유월절을 제정해주셨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권한으로 세워주신 특별사면법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유월절을 통해 형의 전부를 소멸시켜주셨다.

그런데 유월절이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되어버렸다. 그 이후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늘 사형수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세워주신 유월절이 사라져버렸기에 하나님께서 다시 오실 수밖에 없었다. 유월절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이므로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세울 수도, 알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얼마나 극악무도한 죄를 지었기에 사형을 선고받았을까. 천국을 소망한다면,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목숨 바쳐 세워주신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다시 이 땅에 임하신 재림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극악무도한 죄를  유월절로 용서하시어 영생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 두번째 이땅에 오셨습니다.
구원을 바라는 자들을 위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다시 육체 옷 입으시고 오셨습니다.
두번째 다시 오신 그리스도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께서 좌정해 계신 하나님의교회에 오셔서  죄사함과 구원에 축복 받으세요.

2013년 12월 23일 월요일

알곡교회=하나님의교회ⓥⓢ 가라지교회=??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교회 역사]

알곡 교회와 가라지 교회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와 교파가 있다. 모두 자신들의 교회가 정통교회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 많은 교회 중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통교회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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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많은 교회와 교파가 있다. 모두 자신들의 교회가 정통교회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 많은 교회 중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통교회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정통성을 지닌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그것이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24~30)

주인의 농사를 훼방하기 위해 원수가 뿌린 것이 가라지다. 가라지는 곡식과 모습이 매우 흡사하다. 해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의 구별은 어렵다. 이 점 때문에 비유 속의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했다. 주인은 일꾼들에게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두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그 밭은 온통 번식력이 강한 가라지 밭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가라지는 아무리 많아도 잡초다. 결국 추수 때 가라지는 거두어 불사르게 된다.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은 같은 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13:36~43)

예수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의 가장 큰 특징으로 ‘불법’을 꼽으셨다. 불법을 행하는 교회는 가라지 교회이며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교회는 알곡 교회다. 하지만 비유 속에서 말씀하셨듯이 세상에는 알곡보다는 가라지가 더 많다. 이는 초림 예수님께서 세워주셨던 하나님의 계명들이 예수님 십자가 이후 무참히 훼파되므로 온 세상에는 불법을 행하는 가라지 즉, 거짓 교회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농부가 원하는 것은 알곡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불법을 행하는 자들도 겉으로는 하나님의 선지자 노릇을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행했다. 예수님의 비유처럼 겉으로는 절대 판단할 수 없는 것이 가라지다. 하지만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수 있다고 하셨다(마태복음 7:16). 그들의 불법적인 행위가 그들이 가라지라는 것을 증거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겉으로는 모습이 비슷해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가라지로서 절대 천국에 갈 수 없다. 그리고 결국 가라지는 곳간에 들어가지 못하고 풀무불에 던져지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의 많은 교회 중 어느 교회가 가라지 교회일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알곡이 뿌려졌던 사도시대의 신앙에 대해 조명해봐야 한다. 성경에서는 우리들이 구원받으려면 불법의 씨가 뿌려지기 이전의 신앙으로 돌아가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한 초대교회의 신앙과 진리를 고수해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에베소서 2:20)

사도 바울은 우리가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님께 직접 듣고 배운 사도들의 가르침대로 행한 사도시대의 진리가 완전한 진리이므로 알곡이 되기 위해선 이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을 규례로 삼으시고 지키는 본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그 가르침대로 사도들도 안식일을 지켰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사도행전 17:2)

이로 보건대 안식일은 가라지가 뿌려지기 이전의 순수한 하나님의 진리다. 이와 반대로 오늘날 기성교단이 지키고 있는 일요일은 사도시대 이후 덧뿌려진 가라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등 하나님의 절기 또한 가라지가 뿌려지기 전 예수님과 사도들이 지켜온 하나님의 법이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6:17~28)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사도행전 2:1~4)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요한복음 7:2, 37~39)

그러나 유월절은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폐지됐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기들이 하나 둘 사라져 온 세상은 가라지 천지가 되고 말았다. AD 321년 일요일 휴업령, AD 354년 성탄절 도입, AD 568년 십자가 숭배, 1798년 추수감사절 등이 그 증거다. 이와 함께 여성도의 머리수건 문제도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고린도전서 11:1~6)

예배드릴 때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남자는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이 초대교회에서 지킨 하나님의 진리다. 이 또한 가라지가 뿌려지므로 변개되고 말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알곡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를 모두 지키는 곳이다. 가라지인 불법이 뿌려지 이전의 순수한 진리를 지키는 성도들이 있는 곳이다. 가라지가 만연한 이 시대 우리가 찾아야 하는 알곡 교회는 하나님의 이 모든 진리를 고소하고 있는 하나님의교회다. 하나님의교회가 순수한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는 정통교회인 것이다.


하나님의교회 안증회▷그들은 누구일까!??






우리는 어떤 사람의 행위만 봐도 그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부처상을 향해 염불을 하면서 목탁을 두드리고 있다. 그는 누구일까. 그는 다름 아닌 불교인이다. 그가 굳이 자신의 종교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의 행위를 통해 그가 불교인이라 가늠할 수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이 머리에 천을 두르고 금요일 정오가 되면 특정 장소에 모여 메카를 향해 큰절을 한다. 그들은 누구일까. 이슬람교인들이다. 그들의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통해 이슬람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인 12월 25일과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누구일까.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이십오 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 경배하더라(에스겔 8:15~16)

하나님을 찬양하고 섬겨야 하는 하나님의 전에서 감히 태양신 숭배를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가 가증하다고 하셨다. 태양신 숭배의식을 하는 자들은 태양신교인들이지, 결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패스티브닷컴


하늘어머니를 찬양하는 하나님의교회

하늘어머니의 자녀들 하나님의교회


2013년 12월 14일 토요일

하나님의교회 역사의 두 얼굴―하나님의 관점

@패스티브닷컴

역사는 가끔 거짓말을 한다. 기록한 자의 관점에서 쓰여지기 때문이다. 기록한 자는 자기 영역의 것을 미화하고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사실을 기록하되 자기 식의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진실을 왜곡되고 꾸며진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역사책들의 얼마는 이렇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492년,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일에 대해 역사는 '신대륙 발견'이라는 수식어를 빼놓지 않는다. 이에 대해 어느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문명세계가 발견한 새로운 대륙이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아메리카'하면 '신대륙'이라는 단어를 함께 떠올려 왔따. 하지만 이것은 다분히 역사를 기록한 자의 일방적인 논리이며 거짓말이다. 아메리카는 새로운 대륙이 아니었다. 이미 그곳에는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콜롬버스와 같은 유럽인의 관점에서는 신대륙일지 몰라도 원주민들에게 있어 아메리카는 조상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이며 고향이고 유산이었다. 다시 말해 유럽인에게 이 역사는 '신대륙 발견'이었지만, 원주민들에게는 '유럽인의 생활권 침해-이후에는 강제적이고 악랄한 침략으로 변했다'였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유럽인의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만을 접했던 것이다.

사람이 기록한 역사는 십자군 전쟁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십자군 전쟁은 천주교와 이슬람교 간에 예루살렘 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다. 이 역사는 대개 천주교의 편에 의해 쓰여졌다. 천주교의 입장에서는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한 성전(聖戰)'이었지만, 이슬람교의 입장에서는 '외세의 침략에 대한 방어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 역사는 천주교가 십자군을 결성할 수밖에 없는 부득이한(?) 이유에 대해 "성지를 회복하는 일은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교황 우르바노 2세의 명령 때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역사를 읽은 자는, 특히 천주교인들은 십자군 편에 서서 십자군 전쟁이 성전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을 심산이 크다.

역사는 이렇듯 누구의 관점에서 쓰였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일제강점기에 대한 기록 또한 일본과 한국의 관점은 판이하게 다르다. 강점의 역사에 대해 한국은 일본의 '침략'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의 번영을 위한 '진출'이라는 전혀 다른 옷감으로 짜깁기하고 있다. 강점기 때의 쌀 '수탈'의 역사를 일본은 '수출'로 기록하고 있다. 또, 의병 '학살'에 대한 만행을 일본은 '토벌'로 표현하고 있다. 한일 간에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다행스러운 건 이 역사에 대해서는 목격자와 증인이 있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조상들의 증언 덕분에 우리는 전혀 다른 관점의 두역사의 기록을 접하면서도 어느 것이 진실인지 통찰할 수있다. 하지만, 일본인들 가운데는 그들의 관점에서 쓰여진 역사만을 고집하며 한국을 얕잡아보고 반대한다. 이렇듯 혁사는 기록한 자의 편에 선 사람들의 마음에 오롯이 뿌리를 내려 고정관념으로 자리잡는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역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자, 자세히 읽어 보라.

“성탄절을 12월 25일로 지킨 것은 354년의 기록에 나타났으니, 곧 로마감독 리베리우스(Liberius) 시대였다. 379년에는 콘스탄티노플 시에서 축하하였고 애굽과 팔레스틴에 전파되었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을 특기하자면 그 풍속이 로마에서 일어난 것이니 그 차제가 이런 것이다. 로마에는 12월 말에 들어서면서 연거퍼 삼대 축제일이 있은 것이다.
그 하나는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 또 하나는 시길라리아(Sigillalia) ··· 나머지 하나는 브루말리아(Brumalia) 제일이니 이것은 동지제로서 태양의 떠오름을 축하하는 절기였다. 이런 축제일에 가담할 수 없는 기독교인들로서는 별다른 의미로 축하하는 집회를 모색하게 된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 태양이 나온 후에 탄생하셨다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서 이때로 크리스마스를 삼아 축하하는 풍이 시작하게 된 것이니 이것이 곧 구주 강탄 축하의 시작인 것이다.” (교회사, 이건사)

로마의 축제요, 태양신의 제삿날인데 그날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정하는 것이 합당하렷다…. 사실을 기록하였으되 해석이 이상하다. 만약 이 역사의 기록을 보며 크리스마스가 면면히 이어져온 기독교의 문화,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크나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크리스마스에 대해 단 한 글자도 기록하고 있지 않다. 사도 바울이 이 역사를 읽는다면 어떻게 해석할까. 일찍이 그가 했던 말을 다시 하게 되리라.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하고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고 구원을 바라며 그의 말씀을 믿고 따른다. 진정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믿고 구원을 바란다면 교회 역사의 이면에 감추어진 진짜 얼굴을 가려낼 혜안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혜안이 없다면 역사는 제쳐두고 성경만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기록한 역사처럼 거짓이 없으며 100% 신뢰할 만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쓰여진 성경대로 행하는 하나님의교회는
크리스마스가 아닌 하나님께서 명하신 새언약유월절을 지킵니다.

2013년 12월 13일 금요일

미래를 준비한 대통령= 넬슨 만델라 '아즈위★Azwie☆희망'

@패스티브닷컴


12월 10일,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되었다. 영결식에는 전 세계 90개국 정상들이 참여했고 여기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리위안차오 중국 국가부주석 등이 포함되었다. 지난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장례식을 뛰어넘는 역대 최고 규모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1964년,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격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철폐를 위해 싸우다 투옥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 46세였다. 사형을 기다리고 있던 만델라는 종신형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종신형은 적어도 그의 투쟁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로벤 섬에 수감된 466번째 죄수, 만델라는 종신형을 선고받아 정치범으로 살게 되었다. 독방에 갇힌 지 4년째 되던 해, 어머니가 죽고 이듬해 큰 아들마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지만, 그는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투옥 14년째 되던 해, 아이를 낳은 큰딸이 손녀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만델라를 찾아왔을때 그가 쪽지에 적어준 이름은 이것이었다. '아즈위(Azwie 희망)'.

그는 감옥에서 죽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준비만 잘한다면 언젠가는 자유인으로 아프리카 대지를 두 발로 걸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처음엔 열악했던 감옥 생활도 여러 번에 걸친 감옥 투쟁으로 점점 개선이 되었고, 교도관과도 친하게 지내면서 로벤 섬은 마치 정치범들의 대학과 같은 곳으로 바뀌었다.

젊은 시절 그는 선수 수준의 복서였다. 감옥에서도 그는 여전히 일상적인 권투 연습과 유산소, 무산소 운동을 꾸준히 연습했다. 감방 안에서 제자리 달리기를 45분, 팔굽혀 펴기 200회, 윗몸 일으키기 100회, 허리 굽히기 50회 이상을 매일같이 했다. 감옥 생활은 사람을 무기력하고 나태하게 만드는 곳이다. 그러나 나이든 만델라가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수감자들도 그를 따라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만델라는 그가 있는 곳을 변화시키는 데 능통한 인물이었다.

결국 이러한 그의 행동들은 남아프리카 인종차별정책의 철폐로 이어진다. 감옥에서 그는 젊음을 바쳐 노인이 되었지만 노인 만델라는 이제 희망을 가지고 '준비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1990년 2월 11일, 27년간의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71살의 나이에 그가 찾은 자유는 남아프리카인들의 ‘진정한 자유’를 되찾는 것을 의미하였다. 만델라는 그의 회고록에 이렇게 기록한다. “비록 일흔한 살이지만 나는 내 인생이 이제 막 새롭게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나의 만 일 동안의 교도소 생활은 이제 끝이 났다.”

흑인인권운동가이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 199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는 어떤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환경을 탓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도 죽는다는 생각보다는 다시 찾을 자유와 미래를 준비했던, 그의 긍정적인 생각과 노력을 통해 영적 사형수들인 우리의 모습을 조명해 보게 된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성경은 우리의 삶이 이 땅이 전부가 아닌 돌아갈 본향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였으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히브리서 11:13~16)

이 땅의 삶이 다하고 나면 우리 영혼이 돌아가게 될 하늘 본향이 기다리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늘 본향에 돌아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하늘 본향에 돌아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죄수들이 죄 사함을 받아야 자유를 얻는 것처럼, 영적 사형수들인 우리들도 죄 사함을 받아야만 자유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새 언약 유월절’을 세워주신 것이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28)

유월절이야말로 영적 감옥에서 하늘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확실한 준비라 할수 있다. 점점 각박해지고 각종 범죄와 재앙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 안주하며 희망을 잃어버리고 살기보다, 돌아갈 하늘 본향을 위해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자신이 처한 환경에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만델라처럼, 우리도 희망을 가지고 영원한 세계, 천국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새 언약 유월절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야 할 것이다.

2013년 12월 7일 토요일

절대! 포기를 모르는 하나님의교회~



표를 정하고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수없이 많습니다.

힘들고 지치면 이 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훗날 내 모습을 그려봅니다.

포기와 , 어떤 선택을 할 때 환하게 웃고 있을지.


하나님의교회 <>中




하나님의교회 시온가족들~우리도 절대 포기 하지 말아요~
천군 천사 호위 속에 하늘아버지 어머니께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실때
그 자리에 불려지는 이름이 될 수 있도록 
하늘생명책에 하늘에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는 이름이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요^^
어서 그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2013년 12월 6일 금요일

하나님의교회 다.시.태.어.나.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나님의교회 [침례]--------------------------------------------------------


§다시 태어나라§


2천 년 전 어느 날 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유대인 관료였던 니고데모였다. 그는 후에 아리마대의 부유층인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는 데 적극 지원했던 장본이이다.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믿고 있었던 그는 예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다. "랍비여, 당신이 하나님께로 오신 선생인 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심오한 말씀을 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여쭈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하셨다. 니고데모의 말대로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과연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거듭남의 의미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늘에서 지은 죄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생들은 하늘에서 하나님께 범죄하고 쫓겨 내려온 죄인이다(마태복음 9:13). 죄가 있는 상태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없다. 그래서 죄인인 우리들이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첫걸음으로 허락해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침례’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2:38)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6:3∼4)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베드로전서 3:21)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처럼 침례를 통해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 죄의 몸을 물속에 장사하고,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침례를 통해 죄로 인해 죽게 된 우리들이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즉 침례는 우리의 죄를 물로 장사 지냄으로써 죄 사함을 얻는 하나님의 축복된 예식이다.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의 의미다.
예수님께서 본보여주신 첫 번째 진리, 침례
요한은 예수님의 직속제자인 요한과 동명이인이다. 흔히들 세례 요한이라고 부른다. 그의 업적 중에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 예수님께 침례를 집전했기 때문이다.

이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마태복음 3:13~14)

세례 요한의 말대로 침례는 죄인들이 죄 사함을 얻기 위해 행하는 예식이다. 그런데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침례를 받으신 것일까. 그것은 예수님의 본을 좇아 우리도 침례를 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15)

예수님께서는 침례를 통해 죄 사함을 얻기를 바라시며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푸시고 제자들에게도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침례를 주라고 말씀하셨다.

이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한복음 3:22)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 (마태복음 28:19)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의 본을 좇아 침례를 받아야 한다.


성령시대 구원자로 오신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
진리가 있는 하나님의교회에서 받는 침례는 구원의 첫걸음입니다.

구원의 첫 걸음, 침례 받으셨나요?


다시태어난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천국을 향해 오늘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